[필리핀 생활 요약 일기] PHILIPPINE LIFE BY CALEB (Korean)
나의 호주 생활은 짧고도 험난 했다. 모든 문제는 이전 필리핀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1월에 나는 한국에서 모든 계획을 끝마치고 마닐라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전에 8개국 모든 여행, 워킹 홀리데이, 출장, 공모전, 봉사활동을 직접 계획하고 움직였기에 나의 정보나 계획은 거의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출발과 동시에 교만이었다고 느꼈다. 출발 직전까지 나는 확인 그리고 또 확인을 거쳤지만 나의 계획에는 사각이 너무 많았다. 모든 것이 실수투성이였다. 그렇게 저렇게 나는 마닐라에 잘 도착을 했다. 첫 계획은 16주 Baguio JIC Academy IB Sparta 오로지 내가 앞으로 여행에서 필요한 회화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정규 수업은 07시부터 17시까지였고 19시부터 22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22시부터 24시까지 토론 반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진행했고 24시부터 01시까지 토론 중 내가 모르는 단어나 다른 잘 하는 사람의 패턴을 옮겨 적었다. 그리고 01시부터 02시까지 앞으로 여행을 위한 체력을 위해서 간단한 맨몸운동과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나의 공부 그리고 수업 방식은 난 문법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 문법 수업에 2번정도 참가해보고 아니다 싶어 수업 교체를 신청했다. 매니저나 원장은 넌 무조건 문법 해야 한다. 나중에 넌 점수에서 뒤쳐질 것이다 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나는 인생을 살면서 내 방법으로 재미있게 공부해보고 싶었다. 여태까지 모든 공부 방식은 남들이 시키는 대로 해왔다. 좋은 학원이 있으면 가봤고 좋은 방법이 있으면 시도 해봤다. 하지만 나는 늘지 않았다. 그냥 그런 방법에 대해 궁금증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엔 내가 하고 싶은 방식을 선택해봤다. 2시간 한 선생님 수업으로 이루어지는데 10시간 동안 선생님들과 3가지정도의 주제를 가지고 계속 이야기를 했다. 그만큼 내가 준비해야 하는 양이 많았지만 꼭 영어를 배운다기 보단 그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까지 습득 할 수 있었기에 나는 내 방법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필리핀에 현지 강사들은 영어 선생님이 되기 전에 수 많은 직업, 전공을 가지고 있다. 어떤 선생님은 간호사 어떤 선생님은 문학을 전공하고 또 다른 선생님은 철학 비즈니스 호텔 등등 여러 가지의 전공을 가진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 나는 모든 부분에서 선생님들과 나의 생각을 공유 해왔다. 선생님들은 내가 틀린 문장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고쳐주고 종이에 적어줬다. 나는 그걸 또 다른 수업에서 사용하고 이전 선생님이 잡지 못한 부분을 다른 선생님은 잡아내고 그렇게 완벽한 문장을 그리고 내가 말하고 싶은 문장을 만들어왔다. 지루한 수업은 없었고 항상 수업이 기다려졌다. 그렇게 평일을 보내왔었고 토요일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일요일은 교회를 갔다 와서 단어를 외우면서 토요일에 공부와는 멀어진 마음을 진정 시켰다. 한번씩 공휴일이나 4주마다 한번씩 있는 방학기간마다 큰 차를 빌려 필리핀 관광지에 1박2일로 여행을 다녔다. 필리핀은 공휴일이 너무 많아 돈을 낸 만큼 수업 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 한번씩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그것 또한 기회라 생각해서 재미있게 놀았다.
선생님들과 개인의 생각에 대하여 공유 하다 보니 학원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민감한 부분인 월급에 관한 문제였다.
현재 선생님들의 월급 계산법은 55페소(1:1 개인수업), 60페소(그룹수업)으로 지불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100페소당 약 2500원). 인기 많은 개인수업 선생님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하루에 최대 10시간 수업을 신청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총 550페소(13,750원). 주말, 공휴일을 제외한 한 달의 수업 날짜를 23일로 가정했을 때 12,650페소(316,250원) 이란 돈이 계산된다. 현재 필리핀의 Bic Mac index(US$)는 3.67(US$)로 전세계 중 26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3.78(US$)로 10센트 차이로 25위에 유지하고 있다. 현 상황으로 볼 때 12,650페소(316,250원)을 월급으로 받는 Baguio JIC 선생님들은 일을 계속 하면서도 생활고에 계속해서 시달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학생들 80명 수용 기숙사 건물 임대료는 일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약 2500만원 이하로 들어간다. 달로 환산했을 때 2,083,333원이다.
학생들은 4개원 기준에 총 475만원을 지불 한다. 이 가격에는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있다. 그럼 이 가격을 달로 환산했을 경우 118만7천5백원이란 돈이 나온다.
결국 엄청 많이 남는 장사인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받는 월급은 고작 316,250원, 당연히 모든 기업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곳이라고 하지만 나는 화가 났다. 선생님들의 권리를 위한 목적도 있었고 선생님들이 겪는 생활고만큼 당연히 학생들의 수업에 질은 떨어질 것이라 생각해서였다. 누가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 일을 하는데 생활에 안정이 없다면 어떤 이가 열심히 일하고 싶을까? 그래서 나는 학원 경영진에게 현재까지의 상황을 설명했다. 한국에 유학원에게 돈 주고 술 사주사주는 것 보다 좋은 선생님 안정시켜 오래 일하게 하는 것이 학원 마케팅에 더 큰 효과를 줄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결국 학원 내에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솔직히 이 모든 부분은 내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니다 그리고 이때 나는 이성적인 부분보단 감정적 부분이 앞서 일을 진행한 것도 사실이다.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급여와 현재의 경영 상황 때문에 서로서로 모여 그만 둘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 모습이 가슴이 아팠다. 처음 이 이야기를 경영진에게 할 때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언젠간 선생님들이 다 그만두고 잘못되었음을 몸으로 느낄 때 그때 내가 했던 말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있다면 학원은 조금 더 빨리 바뀔 것이고 선생님들은 부족하지만 현재보다 좋은 대우를 받으며 직장 생활 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학원을 수료한지 2개월이 지났는데 아직 학원은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몇몇 선생님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해 내고 있다. 이유는 인터넷 수업 때문이다. 선생님들과 나는 어떻게 하면 선생님들의 월급을 올려줄지에 대해 많은 토론을 진행해왔다. 그 중 가장 실현 가능성 있는 방법이 Skype로 진행되는 1:1 화상 영어 수업이다. SNS를 통하여 홍보하고 학생을 받으면 2번의 샘플 수업을 거친 후 마음에 들면 입금하고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인터넷 Blog( http://eslspeakingayrra.blogspot.com )를 이용해 수업 커리큘럼을 만들었고 수업료는 다른 업체의 평균 가격을 E-mail나 홈페이지로 확인한 후 비교해 가장 낮은 가격을 가지고 있는 경쟁 업체의 가격보다 내렸다. 이와 같은 노력으로 인해 현재 한 명의 선생님은 학원 일을 하면서 주말을 이용해 최대 5명의 학생을 더 받을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졌다. 약 50만원(20,000페소) 이상의 수입을 더 올리게 된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현재는 선생님들끼리 모여서 따로 사업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돈을 위한 목적이 아니었기에 필리핀에 있는 동안만 같이 일을 도왔다.
Skype 화상수업을 만들기 이전 나는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한국에서부터 어머님 때문에 암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계속해서 조사를 하던 중 Graviola라는 천연 항암 치료제를 발견했다. Graviola는 자연 항암 치료제라는 타이틀을 달고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제품이다. 내 마지막 정보에 의하면 한국에서의 Graviola농장은 단 하나뿐이고 몇 달 전부터 묘목을 얻기 위해 예약을 해도 받지 못한다고 한다. 농장이 단 하나뿐인 이유는 날씨가 더운 나라에서만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말린 나뭇잎 같은 경우 약 2,5000원/200g으로 인터넷으로 팔리고 있긴 한데 가짜와 더러운 상태에 대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조사한 바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나뭇잎을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수입해 호주에서 생활할 용돈을 만들기로 결정 했었다. 처음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 매주마다 Baguio근처에 있는 모든 시장은 다 돌아 다녔다. 과일 그리고 야채장수를 잡고 Graviola를 아냐고 엄청 물어봤었다. 하지만 모든 상인들의 대답은 모른다 이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보에 의하면 분명 필리핀에서 자라는 것이 확실하다고 아는데 아무도 모른다니 아이러니한 일 일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맨땅에 헤딩도 여러 번 어떤 계기로 필리핀 친구에게 사진을 보여줬는데 사진 옆에 조그마한 과일을 보더니 Guyabano! 라고 외쳤다. 나는 그거 아니라고 이거 이름은 Graviola라고 다시 설명 해줬다. 하지만 혹시나 해서 인터넷검색을 해봤다. 그러니 그라비올라(Graviola)가 구야바노(Guyabano)인 것이다. 구야바노(Guyabano)는 그라비올라(Graviola)의 따갈로그 언어이며 모든 필리핀 사람들은 Guyabano를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유레카를 외치며 다음 주말 다시 시장에 들어가봤다. 이번엔 그라비올라(Graviola)라는 이름은 버리고 구야바노(Guyabano)라는 이름을 사용해서 여러 상인들한테 물어봤다. 당연히 상인들은 알고 있었고 거기에 대한 여러 가지의 정보들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살고 있던 Baguio지역은 필리핀이긴 해도 날씨가 선선한 편이라 Guyabano가 자라지 않는다 라고 했다. 만약 Guyabano를 구하고 싶으면 조금 남쪽인 Mindanao지역으로 가라고 했다. 하지만 Mindanao지역은 필리핀의 ISIS소굴이라 불릴 정도로 무슬림들이 많이 살고 있고 테러도 많아 엄청 위험한 지역이다. 나는 지금까지의 고생이 너무 아까워 Mindanao근처에 지인이 살고 있는 필리핀 친구를 찾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전과 마찬가지로 어디로 움직이든 Guyabano를 이야기하고 설명하며 다녔다. 그러던 끝에 결국 작은 농장이지만 지인을 가지고 있는 몇 명의 필리핀 친구들을 찾을 수 있었다. 모든 농장에 연락한 결과로는 나뭇잎 전부다 공짜로 제공 받기로 했고 나는 배송 비와 수고에 대한 비용만 지불하기로 하고 농부와의 거래를 끝 마쳤다. 농부에게 현재 한국의 Guyabano leafs의 문제점을 이야기 하고 공정 과정에서의 완벽함을 요구했다. (공정이 필요한 이유는 한국으로 수출을 하기 위해선 모든 잎은 마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냥 마른 잎은 쉽게 부서지고 끓일 경우 잔여물이 너무 많이 남게 되어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깨끗한 잎을 한번 찐 다음에 말려야 끓일 경우 모양도 상하지 않고 상품가치도 재 구매 의사도 높아진다 라고 생각해서 이다.) 개발이 덜 된 나라일수록 항상 철저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느낀 나는 공정이 끝난 상품의 샘플을 받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첫 번째 샘플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마음에 들었다. 너무 깨끗했고 신선해 보였다. 확인과 동시에 공정이 끝난 나뭇잎200kg을 제시했다. 바로는 어렵고 과일을 딴 이후에 물건은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 시기에 한국에서의 판매 경로도 완료가 되었다. 원 재료 자체를 공짜로 공급 받다 보니 한국에서의 나의 상품 경쟁력은 너무 좋았고 한국 땅은 작지만 나에게 있어 한국 시장은 너무 거대해 보였다. 모든 것은 100%이상이라 할 만큼 완벽했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진행될 줄 알았다. 마지막 하나 남은 것은 배송 이었다. 나는 배송비용 때문에 배송은 가장 비용이 적은 배로 보내려고 했다. 그리고 배송회사를 찾는데 아무데도 이 나뭇잎을 배송해준다고 하는 업체가 없었다. 정말 난감했다. 필리핀 정부 서류를 가지고 오라는 말만하고 아무도 나와 상대해주지 않았다. 이유는 대마 때문이었다. 그 부분은 나 또한 생각한 부분이었는데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농장에서 문제가 생기겠지 라고 했는데 이건 배송회사에서부터 제품을 받아주질 않는 것이다. 주변 필리핀 친구에게 물어보니 정부 관계자에게 뒷돈을 줘야 서류를 작성해주고 배송할 수 있다고 했다. 그때가 필리핀에서 2주라는 시간이 남아 있을 때였다. 그냥 한숨만 나왔다. 시간도 뒷돈을 챙겨 줄만한 돈도 없었다. 필리핀에서 4주 비자를 더 연장 시킨다고 정부에서의 문제를 내가 어떻게 해결 할 순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모든 시스템을 정지 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아이템 도전은 실패로 끝이 났다.
그렇게 어느덧 4개월이라는 시간은 바람처럼 지나가 버렸고 선생님과 필리핀 친구들과의 관계는 돌처럼 무거워졌다. Baguio를 떠나야 될 날짜는 다가오는데 정말 떠나기가 싫었다. 조금만 더 연장 시켜서 공부 조금 더 하다가 갈까 라는 생각 때문에 신경을 엄청 썼었다. 만약 연장을 한다고 해도 시간은 가는 법이기에 나는 마지막 인사를 준비했다. 나를 거쳐간 선생님들에게 저녁을 대접하고 편지를 쓰고 사진과 선물들을 준비했다. 솔직히 나는 돈이 없었다. 더 이상 돈을 쓰면 호주에서 정착할 돈이 부족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데 그것 때문에도 고민 많이 했었다. 싸고 질 좋고 꼭 필요한 제품은 그렇게 Baguio에 백화점을 다 돌아봐도 없었다. 그냥 딱히 뭘 사야 할지를 몰랐다. 그래서 가장 받으면 기분 좋고 가장 쓸모가 있는 백화점 상품권을 다 돌리기로 마음 먹었다. 그때의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비싼 비용이 나왔지만 살 땐 생각 없이 기분 좋게 사버렸다. 마지막 날 선물을 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라는 행복한 상상에 빠져있었다. 나는 마지막 날까지 100% 수업에 다 참석 했다 학생이 수업에 참석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빠지고 싶은 날도 많았다 하지만 만약 내가 수업에 빠지게 되면 선생님들 월급에서 차감되기 때문에 절 때 그럴 수 없었다. 기대하던 마지막 날이 되고 나는 선생님들한테 준비한 편지와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 어떤 선생님은 미소를 날려주면서 잘 가라고 말하고 또 어떤 선생님은 훌쩍거리며 잘 가라고 인사해 주었다. 나도 울컥하고 가기가 싫었다. 하지만 지금 나의 상황은 외국에 머무른 날보다 앞으로 지내야 할 날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았기에 아쉬움을 뒤로한 체 발걸음을 돌렸다. 다음 목적지는 Baguio 에서 남쪽 필리핀 Manila였다. 원래 Manila는 내 여행 계획에서 없는 지역이었다. Sydney로 가는 비행기 티켓에 문제가 생겨 마닐라에서 시드니로 가는 중간에 시간이 생겨버렸다. 그때 나는 돈도 없었고 잘 곳도 없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치안이 안전한 나라의 경우라면 날도 따뜻하고 하니 밖에서 몇 일 노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필리핀은 치안이 안전하지 않은 나라이기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죽어도 집에 도움 받기는 싫었다. 내가 아는 방법은 Couchsurfing 뿐이었고 나는 죽어라 Couchsurfing에서 숙식을 제공해주는 대신에 한국문화와 한국어를 잠깐이나마 배울 필리핀 친구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갑자기 군대 동기 한 명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Facebook에서 너 필리핀인 것 같던데 나 안보고 갈 거냐?” 그 친구는 마닐라에서 꾀 오랫동안 이민중인 친구였다. 몇 일 너희 집에 머무를 수 있겠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그 메시지만 받고 나는 기뻐 소리질렀다. 그 친구의 메시지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한줄기 빛이었다. 나는 바로 부탁의 메시지를 보냈었고 친구는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친구는 내가 Manila에 거주하는 동안 휴가를 내고 같이 여행을 다녔다. 차가 있어 훨씬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또 몇일은 친구가 결혼 하고 싶은 여자가 있다고 해서 미래의 신부를 나에게 소개 시켜주고 3명이서 같이 놀러다니기도 했었다. 또 친구 부모님도 너무 좋은 분이라 집에서도 너무 편하게 있을수 있었다. 친구 어머님께서는 필리핀에서 엄청 큰 일식레스토랑을 운영하다 스트레스로 인해 작년에 그만 두셨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 아버님은 지금 필리핀에서 통신쪽으로 사업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두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꼭 내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하니 내가 집에 있을 때 항상 그동안 어떤식으로 사업을 진행해 왔는지 어떻게 문제를 극복해 나갔는지에 대해 하나하나 다 설명해주었다. 솔찍히 나는 밖에 나가서 구경하고 노는것도 좋았지만 집에서 친구 부모님과 함께 이야기 하는 것이 훨신 더 재미있었다. 또 다른 세상 공부이었다. 이렇게 나의 필리핀 생활은 끝이 났다.
j이 글에는 다 적지 못했지만 나는 4개월 동안 어떤것에서든 수많은 도전을 해왔다. 그리고 수 많은 변경과 실패를 거듭했다. 어떤것은 내 자신이 만족할만큼 성과가 난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모든것들은 실천에 비례해 많이 얻지 못한 것이 두려워 내 자신이 만든 내면의 자기만족과도 같은것 이었다. 나는 배울수 있었지만 성공한 것이 없었다. 나는 아직 게으르고 냉철하지 않아 상황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맟추려고 한다. 그렇기에 어떨땐 누군가의 강요를 필요로 한다. 더 낮아지고 더 생각하고 더 머리가 아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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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으로 처음출발 [김해공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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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드레드아일랜드 필리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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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메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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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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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홍보용 자료> LOOPER : 한국에서 이용대 창업 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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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야바노(Guyabano)에 대한 많은 정보를 줬던 과일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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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비올라 샘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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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선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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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에서 도움을 줬던 장범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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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에서 도움을 줬던 장범규네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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